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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신성한 사당, 종묘 KOREAN HISTORY · ROYAL DYNASTY · CULTURAL HERITAGE종묘... 조선왕조의 사당(JONGMYO, THE ROYAL ANCESTRAL SHRINE)조선왕조의 역사와 정통성, 유교적 질서와 국가의례가 살아 있는 공간조선왕조의 건국과 함께 세워진 왕실 사당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국가 차원의 제사를 지내던 왕실 사당이다. 여기서 신주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지위를 적어 그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 나무패를 말한다. 따라서 종묘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는 능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모시고 기억하는 공간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왕이 세상을 떠나도 그의 정신과 권위는 사라지지 않으며, 후대의 왕과 백성에게 계속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종묘는 이러한 .. 2026. 7. 21.
대공항(제6부) WORLD HISTORY · WORLD WAR II · AMERICAN ENTRY중립을 외치던 미국은 어떻게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갔는가?(FROM NEUTRALITY TO PEARL HARBOR)루스벨트, 영국 지원, 무기대여법, 그리고 진주만으로 가는 길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 서쪽 국경을 넘어섰다. 전차와 폭격기, 기계화부대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전격전 앞에서 폴란드군은 빠르게 무너졌다. 그런데 16일 뒤에는 소련군까지 동쪽에서 들어왔다.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 사이에 끼인 채 사라져갔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직적인 저항은 거의 진압되었다. 대서양 건너 미국은 아직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이 미국과 무관한 먼 .. 2026. 7. 20.
대공황(제5부) AMERICAN HISTORY · NEW DEAL · SUPREME COURT승리에 취한 대통령, 대법원과 경제에 발목 잡히다(ROOSEVELT, THE SUPREME COURT, AND THE 1937 RECESSION)루스벨트의 법원 개편 실패와 1937년의 두 번째 불황1937년 1월,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다시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향했다.이번에는 허버트 후버와 나란히 앉을 필요가 없었다. 1936년 선거에서 미국 정치사상 가장 압도적인 승리 가운데 하나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차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고, 가족에게 전해 내려오던 네덜란드 성경에 손을 얹어 다시 취임선서를 했다.루스벨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미국 국민이 더 이상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낡은 질서를 원하지 않는다고.. 2026. 7. 20.
대공황(제4부) AMERICAN HISTORY · GREAT DEPRESSION · DUST BOWL바람에 날아간 땅, 길 위로 밀려난 사람들(THE DUST BOWL, MIGRATION, AND LABOR)대공황기의 미국 농촌과 노동자들은 어떻게 버텼는가루스벨트의 뉴딜은 많은 미국인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희망이 곧 풍요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자리와 소득은 조금씩 늘었지만, 대공황은 이미 6년 넘게 미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자연까지 등을 돌렸다. 가뭄과 홍수, 거대한 먼지폭풍이 이어지면서 미국인들은 경제적 재난과 자연재해를 동시에 견뎌야 했다. 그 시절의 미국은 마치 운이 모두 바닥난 나라처럼 보였다.대평원을 뒤덮은 더스트볼의 먼지폭풍-->쟁기로 시작된 재앙대평원 지역의 재난은 하루아침에 생긴.. 2026. 7. 20.
대공황 (제3부) AMERICAN HISTORY · NEW DEAL · POLITICAL CONFLICT루스벨트의 적들은,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는가(ROOSEVELT, HIS ENEMIES, AND THE 1936 LANDSLIDE)보수파의 반란, 대중선동가의 등장, 그리고 1936년의 압승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처음부터 부자와 기업을 적(敵)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을 민주당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이끄는 조정자로 생각했다.공화당원과 민주당원, 노동자와 기업가, 진보파와 보수파를 한자리에 모아 대공황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겠다는 구상이었다. 1934년 한 지지자가 민주당 행사에 참석해 연설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그는 이를 거절했다.경제회복과 국가재건은 어느 한 정당의 사업이 아.. 2026. 7. 20.
대공황 (제2부) WORLD HISTORY · GREAT DEPRESSION · NEW DEAL루스벨트와 뉴딜의 첫 100일(ROOSEVELT AND THE FIRST HUNDRED DAYS)“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1933년 3월 4일 아침, 워싱턴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검은 리무진 한 대가 취임식장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차 안에는 대공황의 책임자로 몰려 권력을 잃은 허버트 후버와, 미국을 구하겠다고 약속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전날 루스벨트가 후버에게 “퇴임 준비로 바쁘실 테니 답방하지 않으셔도 이해하겠다”고 말하자, 자존심이 상한 후버는 차갑게 대답했다. “루스벨트 씨, 당신도 워싱턴에서 나만큼 오래 지내게 되면 미국 대통령은 누구.. 2026.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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